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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주간신문]청해진 창간10주년특집-의인(義人) 박주선

기사입력 2010.01.27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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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도주간신문 청해진
    창간10주년특집-인권이야기

    - 의인(義人) 박주선
    “시련에서 희망을 싹틔우며” 

       
    ▲ 박주선 국회의원
    의인(義人) 박주선 국회의원은 지난 1974년 2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동년 3월 제16회 대한민국 사법시험에 수석으로 합격하여 검사로 임명받아 1989년3월부터 1990년 11월까지 우리지역 광주지방검찰청 해남지청장(동백장학회 설립)을 지냈다.
    그는 대검 중수1,2,3과장과 서울지검 특수1,2부장검사를 거쳐 대검찰청 수사기획관 (DJ비자금 수사 유보 결정)과 대통령 법무비서관을 거친 대한민국 최고의 법조인이 세계 사법사상 초유의 세 번 구속 세 번 무죄의 참혹한 시련을 이겨낸 호남의 등불이다.
    이에 국가인권위원회는 ‘피의사실 공표와 인권침해’를 주제로 한 공청회를 개최했고 ‘박주선 인권유린 사태’를 주요 피해사례로 다루면서 국가적 차원에서 자성의 기폭제가 되기도 했다.
    16대 국회의원(전남 화순/보성)을 거쳐 2008년 4월9일 제18대 광주광역시 동구 국회의원에 출마하여 전국 최고득표율 88.7%로 당선한 박주선의 아름다운 부활-“義人 박주선”의 파란만장한 인생이야기 중에 제5부 세계 사법사상 초유의 인권유린 사건을 본지 독자들의 알권리를 위해 “박주선의 아름다운 부활<저자: 전직 기자 정양기>” 책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하늘이 내린 시련도 이겨낸
              '박주선의 아름다운 부활' 출판기념회는?

       
                                  ▲ 박주선의원 출판기념회
    박주선 국회의원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박주선의 아름다운 부활’책 출판기념회가 광주시 동구 오페라하우스에서 이인제 국회의원, 유종필 대변인, 강박원 광주시의회의장, 김병조 광주대교수을 비롯한 각계각층의 지역원로와 축하객 1,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지난 2008년 1월9일 열려 성황리에 마쳤다.
    이날 정치적 탄압등 힘든 역경 속에서도 인동초 같이 다시 일어선 박주선의 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보며 박주선, 이연숙부부와 수많은 참석자들은 눈물을 적셨다.
    이 책을 쓴 전직 기자 정양기씨는“김대중 전 대통령이‘나와 역사를 함께 쓸 사람’이라며 큰 인물로 인정한 박주선이‘세 번 구속 세 번 무죄’와 같은 보복 표적수사 등 온갖 고난과 시련 속에도 굴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모습을 기록으로 남겨 많은 사람에게 알려야겠다는 심정으로 책을 쓰게 되었다”면서“맹자 말씀에 ‘큰 일을 할 사람은 하늘이 반드시 시련을 내린다’고 말씀한 것처럼 박주선 전의원이 한반도의 큰 힘으로 뻗어 나가길 기대한다”고 축원했다.
    지난 2005년 5월 22일자 한겨레신문 인터뷰에서 박주선 의원은 “사회질서 유지를 위해 국민에게서 권한을 위임받은 검찰입니다. 검찰은 이에 따른 책임도 반드시 져야 합니다.”
    그는 서울지검 특수1·2부장을 역임하고 청와대 법무비서관에 이르기까지, 김영삼·김대중 정권에서 ‘잘나가던’ 검사였다.
    그런 그가 세차례나 검찰에 구속되고 번번이 법원의 무죄 판결을 받았다. “(나라종금 및 현대 비자금 사건) 수사 검사로부터 ‘이 사건은 기소할 수도 없고, 기소해도 무죄인데 위에서 자꾸 하라고 한다’는 말을 똑똑히 들었다”고 그는 말한다. 박 전 의원은 “기본적으로 국민의 신뢰가 있어야 검찰의 수사 결과가 존중받을 수 있다”며 “상대방이 수사 결과에 승복하는 것은 물론 검사 스스로도 납득할 수 있는 수사여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또 검사를 총을 든 군인에 비유하기도 했다. “총기사고로 무고한 사람이 다치면 해당 군인뿐 아니라 지휘관이 연대책임을 지는 것처럼 검찰도 마찬가지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은 무죄가 나더라도 ‘견해 차이’라는 단순하고 자위적인 변명으로 책임은 유야무야된다”며 “무죄 평결을 인사에 반드시 반영해야 하는 것은 물론, 무죄 평결 과정에 외부인을 참여시켜 검찰권의 무분별한 행사를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石泉>

    ◑ 박주선의 아름다운 부활-“義人 박주선”의 파란만장한 인생이야기 중에 제5부 세계 사법사상 초유의 인권유린 사건을 본지 독자들의 알권리를 위해 이 책을 소개한다.

    사법정의 세우기 위해 ‘극단의 길’도 생각했던 ‘의인(義人) 박주선’
    ‘대법원 무죄판결’ - 하늘은 결코 그를 버리지 않았다
    세계 사법사상 초유의 인권유린 사건 ‘세 번 구속 세 번 무죄’
    “사악한 정치세력에 대한 준엄한 심판이자 진실과 양심의 승리”

    2005년 5월 27일 서울고법. 대법원에서 무죄취지로 돌려보낸 고등법원 파기 환송심에서 재판부는 ‘박주선 무죄’ 최종 확정 판결을 선고했다.
    ‘세 번 구속 세 번 무죄’라는 세계 사법사상 초유의 ‘인권유린’ 사건 기록이 수립되는 순간이었다. 99년 12월부터 2005년 5월 27일까지 햇수로 7년. 감옥생활 336일. 한 평 감옥에서 두 번의 새해를 맞았다. 하늘이 내린 시련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저는 오늘 그동안 억울한 누명을 쓴 채 갇혀 있던 마녀사냥의 길고도 어두운 터널에서 벗어나 마침내 광명의 세상에 다시 서게 되었습니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어떤 사람도 이 땅에서 저와 같이 억울하게 죄없이 법정에 서는 일이 다시는 없기를 염원하면서 마지막까지 저의 결백을 믿고 성원과 격려를 보내주신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진실은 잠시 가릴 수는 있어도 영원히 숨길 수는 없습니다. 사필귀정의 역사적 천리는 또다시 저를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이번 무죄판결은 사악한 정치세력에 대한 준엄한 심판이며 진실과 양심의 숭고한 승리입니다. 오늘 저에 대한 무죄판결을 계기로 이 땅에서 다시는 표적수사로 인해 저와 같은 제2의 억울한 사람이 나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저에 대한 이번의 무죄판결이 우리사회에서 성역화된 권력으로 군림하고 있는 왜곡된 사법권력이 진정으로 개혁되는 시발점이 되고 아울러 합리적 이성이 사회여론을 주도하는 성숙한 민주사회로 전진하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박주선 의원은 2005년 5월27일 무죄 확정 판결 후 곧바로 동교동 김대중 전 대통령을 찾아 인사했다. 그는 청와대서 법무비서관으로 사정(司正)과 공직기강(公職紀綱)을 맡았던 사람으로서 김 전 대통령에게 심려와 누를 끼친 점을 사과드렸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김 전 대통령은 “청와대로 부르지 않았으면 검찰총장을 했을 사람인데...”라며 “나는 박의원의 청렴 강직한 성품을 믿어왔기 때문에 무죄라는 점을 확신했다. 세상에 이런 무도한 일이 있을 수 있느냐”며 “아무래도 하늘의 뜻이 있는 것 같다.” “나를 보고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큰 뜻을 세우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그랬다. 박주선 의원의 나이에 DJ는 사형선고를 받았다.
    4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 4번의 대통령 도전 끝에 당선됐다. 박주선은 3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 3번 구속되고 3번 모두 무죄 선고를 받았다.
    그렇다. ‘3’이라는 숫자에 박주선 운명의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박주선은 정녕 호남의 순교자인가? 대부분 사람들은 ‘그렇다’라고 단호히 대답한다. 그렇다면 DJ는 알고 있는가? 라는 물음에 역시 ‘그렇다’라고 대답한다.
    독재권력의 폭압과 압제의 사슬을 끊고 자라온 ‘DJ 인동초’는 ‘거대한 음모의 암벽’을 뚫고 우뚝 솟아오른 소나무처럼 ‘박주선 인동초(忍冬草)’로 다시 피어날 것이라는 ‘민초들의 희망’이 그를 ‘아름다운 부활’로 메아리치게 하고 있다.“호남의 순교자 박주선, 무등산은 알고 있다.”
    2008년 1월9일 ▶하늘이 내린 시련도 이겨낸 '박주선의 아름다운 부활 출판기념회에서 저자 정양기씨는 ‘다시 새로운 시작’을 하는 모든 분들께 이 글을 바친다고 밝혔다.

    한편, 박주선 국회의원은 1962.02 보성남초등학교 졸업, 1965.02 보성중학교 졸업, 1968.01 광주고등학교 졸업, 1974.02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1976.02 서울대학교 대학원 수료, 1987.08 영국 캠브리지 대학교 법학부 수료, 1974.03 제16회 사법시험 수석합격, 1976.10~1979.10 육군 법무관, 1979 서울지검 검사, 1983 제주대학교 강사, 1989.03~1990.11 광주지방검찰청 해남지청장(동백장학회 설립), 1993 대검 중수1,2,3과장, 1995 서울지검 특수1,2부장검사, 1997.08~1998.02 대검찰청 수사기획관 (DJ비자금 수사 유보 결정), 1998.02~1999.11 대통령 법무비서관, 2000.05.30~ 16대 국회의원(전남 화순/보성), 2006.4~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서울시장 후보, 2007.4.13 민주당 중앙위원, 2007.8.14 광주동구 지역위원회 위원장, 2007.10.26 제17대 대통령선거 광주선거대책위원회, 상임위원장 및 후보특보단장, 2008.04.09 제18대 광주광역시 동구 국회의원 당선(전국 최고득표율 88.7%), 2008.07.06 민주당 최고위원, 2008.07.08 국회 환경포럼 대표, 2008.08.27 제18대 전반기 외교통일통상위원회 위원, 2008.09.01 - 2009.08.31 북한대학원대학교 초빙교수, 2009.01.13 민주당 국회유린 및 야당탄압저지대책위원회 위원장, 2009.02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공동대표, 2009.06.01 이명박 정권 정치보복 진상규명 특위 위원장을 역임하고 있다.
    <石泉 金容煥 대표기자>

    새감각 바른언론-완도주간신문 청해진 www.wando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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