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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와 함께하는 수필]소박한 꿈을 파는 사람들

기사입력 2005.03.03 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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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와 함께하는 수필]
     
    소박한 꿈을 파는 사람들
                            
                                            박 길 자(생각하는 논술 원장)


     냉장고의 야채바구니와 생선바구니가 비어가면 습관적으로 달력을 쳐다본다.

    5일장이 언제인가 알아보기 위해서다.

    요즘은 장날과는 상관없이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반찬거리를 손쉽게 살 수 있지만 난 늘 5일만에 한번씩 돌아오는 장날을 기다린다.


     가끔씩 장날이 휴일이나 조금 여유스러운 시간이 허락되는 날이면 할 일이 많은 바쁜 주부의 걸음에서 잠시 벗어난다.

    어릴 적 엄마 따라 장 구경 다니는 꼬마둥이 호기심 많은 느릿한 발걸음이 되어 시장 구석구석 둘러보는 재미에 푹 빠져본다.


     이곳은 사람 사는 모습이 여과 없이 펼쳐져 가슴에 와 닿는다.

    직접 기른 채소 보퉁이, 과일 보퉁이 등, 온갖 것들을
    머리에 이고 손에 들고 새벽부터 사람들이 모여든다.
    소박한 서민들의 삶의 보퉁이들이 이 마을 저 마을 향토 내음도 같이 묻어와 정겨움을 풀어놓는다.

    그 모습들은 평범한 우리네 이웃들이 살아가는
    극히 현실적인 모습들이어서 더욱 친근감을 자아낸다.
     
     신선한 채소들로 장식하고 앉아 있는 시골 아낙네의 거친 손끝은 흙을 밑천으로 살아가는 바지런함과 정직함을 말해준다.

     "집에서 농약 안 치고 가꾼 것인께 천원만 주고 갖고 가게나"
     남새거리를 몇 가지 펼쳐놓고 있는 할머니의 작은 외침은 나의 어릴 적 할머니의 애잔한 목소리로 고즈넉이 귓가에 와 머문다.

    그 작은 외침소리와 함께 주름진 얼굴로 고단한 삶의 끈을 단단히 부여잡고 있는 것은 아마도 할머니 머리 위에 내려앉은 한 가닥 햇살만큼이나 아주 소박하고 작은 꿈을 이루기 위함이리라 생각해본다.

    걸음을 멈추고 나물 거리를 사들은 순간 할머니의 얼굴에 무지개 빛은 아니지만 소박한 마음에서 피어오르는 생기 있는 웃음꽃을 대할 수가 있다.

    그들은 이 작은 것을 팔아서 자녀들을 다 키워내고
    생활을 꾸려 나왔으며 앞으로도 계속 꾸려나가겠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찐빵도 사고 단내가 물씬 풍기는 튼실한 과일도 사는 동안 엄마 따라 구경갔던 어린 날의 장터 모습들을 그려보면서 지금의 먹거리와 비교도 해본다.

    그땐 눈에 보이는 것은 왜 그리 모두 다 귀하게 보이고 맛있게 보이던지.......

    먹거리가 풍성해진 지금은 음식을 앞에 두고도 비만 걱정을 먼저하고 있으니 격세지감이 맞는 것 같다.


     가슴팍까지 올라오는 고무 물 옷을 입고 서서
     "새벽에 물 봐온 거라 싱싱해요 잘해 드릴 테니 이리 와 봐요"

     붉은 다라이 속에서 파닥거리는 생선의 숨소리는
    새벽 찬바람 벗삼아 그물 걷어 온 억센 손놀림 어부의 숨소리를 닮은 듯 싱싱해 보인다.

    싱싱한 생선만큼이나 높은 톤으로 시장 사람들의 발걸음을 붙잡은 생선 파는 아줌마의 생기 있는 목소리에서 삶의 진한 욕구를 느끼며 삶의 활력을 찾아본다.


     시장을 한바퀴 도는 동안 참 많은 물건들을 보고 참 많은 사람들의 모습들을 만난다.

    그 만남 들을 통해서 어린 날의 유영 속을 더듬어 보기도 하고 때로는 선명하지 못한 삶의 모습 앞에 어머니 가슴 속 같은 원초적인 힘을 얻어 다시금 희망을 품게 만들기도 한다.

    그들은 묶여진 운명에 순응하며 자신을 원망하지도 않고 사계절의 질서 안에서 순리를 쫓아 소박한 꿈의 보퉁이를 이고 어김없이 이곳을 찾아들 것이다.


     집으로 향하는 걸음이 어느새 바쁜 주부의 걸음이 된다.

    묵직한 장바구니 까만 봉지 속에는 보퉁이 보퉁이 작은 꿈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나는 그 꿈을 냉장고 칸칸이 채워놓고 정성을 더해서 '행복'이란 이름으로 예쁘게 식탁 위에 올려야겠다.

    <생각하는 논술 ☎552-6254 / 016-624-2714>

    입력0503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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