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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도 슈바이처 이강안 원장, 완도군민의 상 수상청산도 슈바이처 이강안 원장, 완도군민의 상 수상지난 16년간 의료 취약지역서 환자들 돌봐 ‘귀감’. [청해진농수산신문] 전남 완도군 ‘청산도 슈바이처’로 불리는 이강안(84) 푸른뫼중앙의원 원장이 올해 군민의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완도군은 29일 올해 완도군민의 상 사회복지 및 환경 부문에 이강안 원장을, 향토방위 및 질서안보 부문에 김성태씨를 선정하여 수상식을 가졌다. 이강안 원장은 지난 2004년부터 16년 동안 의료 취약지역인 청산도에서 의술을 펼치고 있는 점을 인정 받았다.이 원장은 처음 1~2년 의료봉사 활동차 청산도를 찾았다가, 결국 안정적인 노후를 포기하고 섬마을에 정책했다. 이 원장은 지난 1962년 전남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잠실병원 부원장, 혜민병원 원장, 서울 이강안의원 원장 등을 지냈다.그러다 지난 2004년 근무할 의사가 없어 폐원 위기에 처한 푸른뫼중앙의원 원장직을 자원해 지금까지 섬마을 주민 건강지킴이로 활동하고 있다. 80대 나이에도 불구하고 수시로 환자 가정을 방문해 건강 상태를 체크하고 인근 여서도, 모도까지 배편으로 왕진을 다니고 있다.또 ‘청산의 슈바이처’로 불리며 후진 양성을 위한 장학회를 조직하는 등 지역사회 나눔문화를 이끌고 있다. 향토방위 및 질서안보 부문 수상자인 김성태씨는 헌혈 510회를 기록한 ‘헌혈왕’으로, 백혈병 환자나 혈액암 환자에게 헌혈증 300장을 무상 기증하고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에 간과 신장을 기증키로 하는 등 생명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한편, 완도군은 핵심 전략산업인 해양치유 블루존 선정과 해양치유센터 건립사업 예산확보에 적극 지원해 준 정태호 서울 관악구을 국회의원 당선인을 명예군민으로 선정했다.<농수산 윤성호부장> 새감각 바른언론 - 청해진농수산신문 www.chj.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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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군, 수단의 슈바이처 고 이태석 신부 숭고한 삶 기린다[청해진농수산신문] 담양군이 국경을 넘어 숭고한 인류애를 실천한 고 이태석 신부의 정신을 기리고 봉사와 나눔의 참사랑을 실천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수단의 슈바이처’라 불리는 고 이태석 신부는 2010년 1월 선종 후 담양군 월산면 천주교 공원묘원에 안장됐다. 담양군은 이를 추모하기 위해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먼저 관내 학교를 방문 ‘찾아가는 청소년 자원봉사 순회교육’을 통해 이태석 신부가 실천한 헌신적인 사랑과 나눔에 대해 교육을 진행했으며, 하계 청소년자원봉사캠프에서는 학생들과 ‘울지마 톤즈’ 다큐멘터리를 시청하고 소감을 발표하는 시간을 가지며 헌신적인 사랑에 대해 이야기했다. 캠프에 참석한 담양중학교 3학년 이 모군은 “다큐멘터리 시청을 통해 따뜻한 가슴으로 사람을 귀하게 여긴 신부님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나눔을 보고 느끼는 좋은 기회였다”고 말했다. 군은 앞으로 ‘행복한 책 나눔’ 사업을 통해 관내 학교와 드림스타트센터, 지역아동센터 등에 책을 나누고 독서 소감문 발표회를 개최했다으로써 지역 청소년들이 이태석 신부의 따뜻한 사랑을 배우고 실천하는 교육적 의미를 되새기도록 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또한 다가오는 담양산타축제 기간에는 아프리카 어린이들에게 전달하기 위한 희망티셔츠 만들기와 소외가정을 직접 방문 선물꾸러미를 전달하는 ‘찾아가는 산타 이태석’ 사업 등을 추진할 예정이다. 군 관계자는 “앞으로도 고 이태석신부의 봉사정신을 기리고 더불어 살아가는 아름다운 담양을 위해 고 이태석 신부 봉사상 조례 제정 등 관련 사업을 적극 추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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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고 훈민정음 동아리, 장기려봉사상 수상▲ 장기려봉사상 수상 [청해진농수산신문] 장흥고등학교 훈민정음 동아리가 지난 18일 열린 ‘제6회 장기려봉사대회 청소년수기발표대회’에서 보건복지부장관상을 수상했다.장기려봉사대회는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리는 故 장기려 박사의 정신을 계승하고, 바른 인성을 가진 청소년들을 발굴하기 위해 매년 추진되고 있다.국회의원회관에서 개최된 올해 대회는 1차 지역심사, 2차 예선심사를 거쳐 본선심사로 진행됐다.평가는 봉사활동의 동기 및 창의성, 노력 및 지속성, 지역사회 공헌도·파급효과, 실천과 나눔정신을 기준으로 이뤄졌다.평가 결과 다문화가정 자녀를 대상으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는 훈민정음 동아리가 전체 2위에 해당하는 보건복지부장관상을 수상했다.본선대회에서는 동아리 제4기 회장 김주희 학생이 체험수기 발표에 나섰다.김주희 학생은 “봉사활동이란 평생 하지 않으면 안 될 소명으로 생각하고 있다”며, “어린 동생들이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엄마의 나라를 방문할 기회를 마련해 주기 위해 상금과 지원금을 사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훈민정음 동아리는 장흥군자원봉사센터와 장흥군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와 협약을 맺고 매월 2∼3회 토요일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다문화가정 아동들을 대상으로 학습멘토링, 진로캠프 활동, 다문화음식 만들기 체험, 각종 문화 체험을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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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容煥이 만난사람- 완도슈바이처 김성태씨金容煥이 만난사람- 완도슈바이처 김성태씨 (적십자사 헌혈 홍보대사) 320회 헌혈 김성태씨 “헌혈은 나의 운명” 제2의슈바이처, 자신의 신장 및 간의 일부 기증 ▲ 완도슈바이처 김성태씨 "자신만의 행복을 위해서 살아서는 안 된다. 남에게 베푸는 인생을 살자. 일생 동안 아프리카인들을 위해 봉사하여 1952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슈바이처” 정신을 이어받아 자가용차 뒤유리창에 "헌혈, 장기기증, 이웃사랑 당신의 참여가 많은 생명을 살립니다" 라는 문구를 새기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 청해진완도 슈바이처, 김성태(45세, 대주건설 연수원장)씨를 찾아 전남 완도군 완도읍 망남리를 찾아갔다. 건강의 섬 청해진완도에 온지도 8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며 아무 연고도 없는 사람들에게 나눔에 대한 그의 열정이 드러나 있는 참 모습을 인터뷰하며 느꼈다. 김씨는 의도를 가지고 시작한 일은 아니지만 고등학교 3학년인 1983년에 김씨는 요구르트 한 병이 맺어준 인연이 바로 '헌혈'이란다. 헌혈 후 받은 증서는 교회나 단체 등 헌혈증이 필요하다고 연락이 오는 곳에 아낌없이 기증을 하였다는 것. 1983년 이후 26년 동안 헌혈에 320여회 참여하였다. 양으로 따지면 45kg 여성 3.3명의 몸무게에 해당된다는 것. 한달에 2번씩 가능한 성분헌혈을 한다 해도 12년하고도 반년이 걸리는 시간이다. 청해진완도 슈바이처 김성태씨는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에서 나온 홍보물을 보고 주저 없이 신장 기증을 결정 지난 1996년에는 40대 아주머니에게 신장을 기증하고, 2003년에는 대전에 있는 50대 간암환자에게 간의 일부를 기증했다. 2남 1녀 자녀를 두고 한 가정을 이끌어가는 크리스챤 가장으로서 쉽지만은 않은 일들이었겠지만 놀라운 것은 나눔에 대한 그의 태도이다. 김씨는 봉사를 봉사라고 여기지 않고 나와 가족을 위한 저축이며 건강한 사람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하며 누구라도 마음만 결정하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한다. 이 외에도 매달 월급을 쪼개 10여군데 자동이체로 고아원, 양로원, 장애인재활원, 소년소녀 가장 등 이웃을 돕고 있으며, 이른 새벽에 열리는 수협어판장에서 생선 상자를 날라주는 막노동을 한 대가로 돈 대신 생선을 받아 홀로 사는 노인이나 소년소녀 가장, 양로원을 찾아간다. 하지만 오히려 사랑 나눔을 실천할 수 있게 도움을 주신 어선협회 선주, 선장들과 체력관리에 도움준 휴머니즈 헬스크럽 대표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다는 청해진완도 슈바이처 김성태씨의 이야기가 많은 분들에게 알려져 더욱 많은 분들이 장기기증운동과 헌혈운동에 동참하였으면 한다. 또한, 대한적십자사 헌혈홍보대사로 지난 2005년부터는 광주전남 헌혈봉사회 부회장으로,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광주전남 홍보대사 겸 기증인협회 부회장으로 봉사하고 있다. 청해진완도 슈바이처 김성태씨는 소안도에 사는 소아암 학생돕기에 100매의 헌혈증서를 기증하고 백혈병에 고생하는 군외면 황진교회 목사님 아들에게 100매의 헌혈증서를 기증하고 틈나는 대로 장기기증에 대한 대면상담을 통해 자세히 설명해주는 등 운동본부에 가입신청을 안내하고 있다. 김씨는 각종 사회단체 표창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수십회와 전라남도 지사표창 2회, 보건복지부장관 표창(헌혈유공) 등을 수상했다. 한편, 지난 1996년에는 40대 아주머니에게 신장을 기증하고, 2003년에는 대전에 있는 50대 간암환자에게 간의 일부를 기증하고도 항상 밝은 미소를 보이는 “청해진완도 슈바이처 김성태씨”는 전국의 기관에서 최우수상과 대한민국 최고의 목민관상을 수상한 완도군수님이 주는 표창을 한번 받았으면 한다며 웃으며 말했다. "자신만의 행복을 위해서 살아서는 안 된다. 남에게 베푸는 인생을 살자.“노벨 평화상을 받은 슈바이처” 정신을 이어 열심히 봉사의 삶을 사는 “청해진완도 슈바이처 김성태씨”가 건강의 섬 “완도군 홍보대사”로 위촉되길 바라며 더욱 많은 완도분들이 장기기증운동과 헌혈운동에 동참하였으면 한다.<石泉> ◑슈바이처- 일생 동안 아프리카인들을 위해 봉사하여 1952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슈바이처는 30살 이전에 뛰어난 신학자요 철학자, 음악가가 되었다. 29살 때 기숙사의 책상 위에 놓인 잡지에 아프리카인들의 비참한 생활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선교사가 써 넣은 글이 눈에 띄었다는 것."…… 이 곳에는 의사도 없습니다. 약도 없습니다. 의사이신 분은 와 주십시오." 이 글을 본 슈바이처는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아프리카의 흑인들을 위해 일생을 바쳐야겠다고 생각하고 1912년 37살 때 헬레네 브레슬라우라와 결혼하여 함께 아프리카로 떠났다. 온도가 높고 습기가 많은 아프리카에는 많은 환자들 속에 닭장을 개조하여 진료실을 만들어서 거기서 환자들을 치료했다. 의사로서 뿐만 아니라 전도사로도 활동하던 슈바이처는 제 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자 포로가 되기도 하였다. 포로에서 풀려난 그는 또 다시 강연과 오르간 연주로 병원 운영 자금을 모았다. 1924년 다시 랑바레네로 간 슈바이처는 자신의 재산을 모두 털어 제대로 된 병원 건물을 건축하여 일생 동안 아프리카인들을 위해 봉사한 분이다. <김용환 대표기자> 새감각 바른언론-완도청해진 www.wandonews.kr 입력:200902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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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해진칼럼- 쓰레기 줍는 작은 봉사라도서해식 도민편집장 스위스의 교육철학자 페스탈로찌가 어느날 아이들이 뛰어노는 골목길에서 뭔가를 줍고 있었다. 곁에서 유심히 본 어떤 사람이 무엇하냐고 물었다. 아이들 발을 다칠까 걱정되어 깨어진 유리병 조각을 줍고 있다고 했다. 교육학자로 정감이 묻어낸 대목이다. 필자는 얼마전에 경기도 용인에서 종합병원 이사장으로 있는 이제남씨를 만나뵌 일이 있다. 의사가 아니면서도 의료법인을 만들어 병원 경영 책임자로 나선 것이다. 혈혈단신 상경하여 모진 고생끝에 건설업으로 병원이 으뜸이란 꿈을 실현하기 위해 용인서울병원을 세우게 되었다고 했다. 그는 이사장이지만 권위의식이 전혀없고 막역한 고향친구처럼 친밀하고 접근하기가 편하다. 병원문앞에서 오고가는 손님들에게 미소띤 얼굴로 인사하며 병원분위기를 사랑과 친절이 살아 숨쉬도록 앞장서 몸으로 실천해 보이고 있다. 아프리카 콩고 람바레미 오지에서 의료봉사로 일생을 마친 슈바이처를 닮고 싶어한다. 약6년 되었을까 금일고등학교에 모 교장선생님이 계셨다. 그분은 매일 새벽이면 고등학교앞 도로변에 나서서 쓰레기를 줍고 청소를 하며 산교육을 말없이 몸으로 실천하며 학생들에게 귀감이 된 것이다. 금일에서 재직하는 동안 한 3년 동안 계속하였다. 너무나도 아름답고 고마워서 금일의 각사회 단체에서 경쟁적으로 감사패를 전달해준 모습들이 새롭다. 필자는 학교앞에 살면서 그 교장선생님이 저의 멘토가 되었다. 그분 떠나고 나서 이어서 누군가 학교앞 쓰레기 줍는일을 해야 할 텐데 누군가 해주기를 바라기전에 내가 먼저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결심을 하고 계속해서 실천해 온지 벌써 5년이 되었다. 금일 중학교 정문 앞에서 고등학교 앞을 거쳐 읍사무소 측면 도로까지 새벽이면 교회기도회 마치고 집게와 휴지통 들고 거리를 나선다. 가끔 가다보면 야생고양이들이 차에 치어 횡사한 사체들이 길 가운데서 발견되기도 한다. 오고간 차량들이 많지만 누구하나 치운사람이 없다. 필자는 쓰레기봉투에 담아 수거차가 싣기좋은 장소에 갖다 놔둔다. 무더운 여름날이면 음식물 찌꺼기를 함부러 버려서 파리와 벌들이 우글거리는 것을 수없이 보았다. 미화요원들의 고생을 알 것 같았다. 필자는 우글거리는 벌들에 살충제를 뿌리고 쓰레기봉투에 넣은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출타하지 않으면 토요일 새벽도 마다않고 쓰레기 줍기를 해왔다. 내가 공직자였거나 타지에서 온사람 같았으면 감사패도 여러번 받았을 법하다. 조그만 봉사지만 봉사가 좋아서 한일인지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마음이 기쁘다. 금일 모초등학교에서 마을에 존경하는 사람을 찾아 작문을 지어오라고 했단다. 마을의 어린학생눈에 새벽에 청소하는 아저씨 모습이 웬지 모르게 존경이 갔던 모양이다. 존경하는 사람 학교앞도로에서 쓰레기 줍는 아저씨라고 했다. 필자는 그말을 전해 들을때 눈물이 났다. 대통령상보다 값진 보람있는 상을 받았다고 느꼈다. 지금은 저를 아는 초중고등학생들이 길에서 만나면 깍듯이 인사를 한다. 필자는 학생들에게 환경을 깨끗하게 하자고 하면 공손하게 받아들인다. 청소년을 선도하는 멘토가 되려면 착한 행실을 몸으로 실천하면 된다. 유리병이 깨져 길거리에 널려 있을때 자전거 수리점도 없는 섬마을에서 바퀴라도 찔려 펑크가 나면 어쩌나 싶어 유리조각을 줍던 그런 마음으로 세상을 사랑하다보면 분명히 좋은 세상이 올 것으로 믿는다.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이 말한 것처럼 정부가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기전에 여러분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라, 얼마나 신선한 명언인가 우리 모두 그렇게 실천해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