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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살던 고향 소안도
2012년 05월 18일 (금) 22:34:58 청해진신문 chjnews1100@daum.net
<전설따라 마을따라>

나의 살던 고향 소안도
섬 이상의 섬마을

● 지난 2007년 08월 주간경향에 게재 되어 호평을 받았던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의 수필을 소개한다.
<편집자>
사진2매>

[청해진신문]수많은 섬이 다닥다닥 혹은 혼자서 떠 있는 남해안 다도해 중의 하나인 소안도는 완도군에 속한 작은 섬이다. 사람들은 바로 이웃 섬인 보길도는 알아도 소안도는 잘 모른다. 보길도는 빼어난 경치와 유려한 풍광으로 해마다 수만 명의 관광객이 다녀가지만 소안도는 여객선 뱃머리에서 슬쩍 지켜보고 지나친다.

소안도는 철따라 낚시꾼이 적잖이 다녀가고 특히 가을의 도미 낚시는 질과 양이 전국 최고라는 평가를 듣는다. 그렇지만 이 섬의 진면목은 다른 데 있다. 오래전부터 ‘눈 밝은’ 학자들은 이곳을 주목해 왔다. 지금은 작고한 작가 출신의 사학자 이균영 교수가 ‘항일 1번지 소안도를 가다’라는 글을 쓰고, 3·1절이나 광복절이면 TV방송국에서 소안도의 항일투쟁과 생존자들의 증언을 내보냈다. 기억력이 좋은 사람들은 “아, 그 섬 소안도!” 할 것이다.

그 소안도가 내 고향이다. 할아버지가 12살 소년 시절에 가문이 정쟁의 참화로 멸문지화를 당할 때 홀로 피신하여 이곳에 자리잡은 이래 지금 4대째 일가가 살고 있다. 소안도는 반농반어의 비교적 풍족한 섬이다. 다른 섬과는 달리 농지가 많아서 식량을 자급하는데다 미역, 김 등 해초와 각종 물고기가 많이 잡히고 요즘은 전복·광어를 비롯해 고급 어종의 양식업이 활발하여 ‘돈 섬’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날씨가 맑은 날이면 멀리 제주도가 수평선 너머 아스라이 보이고 추자도와 여서도·청산도 등 잘 알려진 섬들이 이웃한다.
계절 따라 푸르다 못해 감청색의 바다색깔이지만 성난 파도가 밀려올 때는 온 섬을 삼킬 만큼 무섭게 바뀐다. 해변가는 수만 년 동안 파도와 싸우다 닳은 까만 조약돌이 널려 있고 겨울이면 섬 전체가 동백꽃으로 수놓인다. 어릴 적에는 동백새가 동백나무 숲을 날고, 그럴 때면 낙화한 동백 꽃잎을 실에 꿰어 왕자처럼 목에 걸고 다니던 추억이 새롭다.

소안도는 기온이 따뜻하여 겨울에도 텃밭이나 농로변에는 배추와 무꽃이 피어나고 논 가장자리에 자라난 야생 미나리 향기가 온 섬마을에 진동한다. 이른 봄의 유채꽃은 제주도에 독점을 허락하지 않는다.

지금은 교통이 발달하여 하루에도 여러 차례 여객선이 오가고 자동차를 싣고 다니기 때문에 오가기가 무척 편리한 섬이 되었지만, 십수 년 전만 해도 바람이 부는 날이면 며칠이나 발이 묶였다. 그러나 아직도 원시와 현대가 공존하는 곳이다.
상당수 섬 주민이 유배당한 선비들의 후예들이다 보니 성정이 올곧고 강직하며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한다. 그래서 항일투쟁은 물론 자유당과 공화당 독재 시대에도 야당표가 많이 나오고, 그 때문에 관의 탄압을 불렀다.

‘항일 1번지’가 된 사연

사진>소안도 비자리의 ‘소안항일운동기념탑’.

소안도 중심지인 비자리에는 ‘소안항일운동기념탑’이 서 있고 가학리 옛 사립학교 터에는 소안항일운동기념관이 자리 잡고 있다. 면민의 성금으로 세운 기념탑이고 정부 지원으로 건립한 기념관이다. 외딴 섬에 웬 항일운동기념탑이고 항일기념관이냐고 의문을 품을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일제 강점기인 1920년대 초 일본제국의회에서는 “소안도를 조선총독부 관할에서 떼어내 본국 직할로 하자”는 논의가 일었다. 총독부가 조선 천지를 폭력으로 지배하고 있을 때 남해안의 작은 섬을 일본 정부 직할체제로 하자고 야당의원이 제안할 정도로 당시 소안도는 항일운동의 본거지가 되었다.

항일기념탑에 새겨진 비문의 내용을 살펴 그 내력을 알아보자.
“우리 고향 소안도는 일제 식민지 암흑기에 항일구국의 횃불을 드높게 쳐들던 한줄기 빛이었다. 선열들은 1914년 송내호 선생의 지도하에 전라남북도와 경상남북도에 걸쳐 수의위친계를 조직한 것을 비롯, 1920년 배달청년회, 1924년 소안노동대성회, 1926년 살자회, 1927년 일심단 등을 조직하고 양기탁·김기한·명제세 선생 등 민족지도자들과 협의, 독립군자금의 모금과 노동자 농민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조직요원을 항일운동의 전초기지인 상해임시정부와 중국 등지에 파견, 동양 3국을 무대로 반제 반봉건투쟁을 전개하시었다.”

이밖에 일제가 소안도는 물론 전국적인 항일운동의 모태가 된 소안사립학교를 폐쇄한 사건 등 소안도의 탄압과 이에 대한 저항은 필설로 다하기 어렵다. 그래서 한 사학자가 ‘항일의 1번지’라고 쓴 것이다. 멀리 동학혁명에서 시작하여 항일운동, 반독재 투쟁에 이르기까지 작은 섬마을 주민들은 함께 싸우고 힘겨운 시련을 겪었다. 기름진 농토와 풍족한 수산물의 소출로 일찍부터 신학문을 배우게 되고, 여기에 중앙정치 무대에서 유배된 지식인들과 동학혁명 때 쫓겨온 사람들이 섬주민들에게 정신적으로 크게 영향을 끼친 것이다.

나는 이런 역사를 간직한 소안도에서 태어나고 소년 시절을 보냈다. 빠뜨릴 뻔했지만 일제 말기 항일운동가의 상당수가 사회주의 사상에 빠져들고, 6·25 한국전쟁은 이 섬에까지 이데올로기 대결을 몰고와 많은 희생자를 냈다. 그래서 내가 자랄 때 어른들은 일제 항쟁에 관해서도 금기시했다. 친일파가 지배하는 나라에서 항일운동은 곧 불온의 대명사처럼 금기시된 것이다.

나는 꿈 많은 소년 시절, 봄이면 지천으로 핀 진달래를 꺾고, 가을이면 야산을 물들인 구절초 꽃밭에 뒹굴면서 니체와 도스토예프스키를 읽고 수평선 멀리 꿈을 키웠다. 책을 읽고 싶어도 읽을 책이 없고, 밤이면 석유가 없어 등불을 켤 수 없는 처지였지만,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 무렵 ‘사상계’는 나의 벗이고 함석헌 선생과 장준하 사장은 나의 스승이었다.
애국혼과 저항정신 그리고 조상의 혼령이 깃들고 아직도 혈육과 벗들이 살고 있는 소안도, ‘그 섬에 가고 싶다.’

▶ 필자 김삼웅씨의 주요 경력은 민주전선 편집국장. 평민신문주간. 친일문제연구소장. 대한매일신보 주필. 성균관대학 겸임교수. 독립기념관장.
▶ 주요 저서는 친일파 1, 2, 3(공저). 한국필화사. 변절자. 곡필로 본 해방 50년. 해방후 정치사 100장면. 아나키스트 박열평전. 해방후 양민학살사. 서대문형무소근현대사. 백범 김구평전. 단재 신채호평전. 녹두 전봉준평전 외 다수.

한편, 필자 김삼웅〈전, 독립기념관장〉씨의 동생인 종식씨가 완도군수로 재임하고 있다.
<옮긴이: 石泉김용환 대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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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201203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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