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9 (월)

? Operation now in progress (115)
n
金容煥이 만난사람- 완도슈바이처 김성태씨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金容煥이 만난사람- 완도슈바이처 김성태씨

                金容煥이 만난사람- 완도슈바이처 김성태씨
                                                       (적십자사 헌혈 홍보대사)

       320회 헌혈 김성태씨 “헌혈은 나의 운명”
       제2의슈바이처, 자신의 신장 및 간의 일부 기증

   
▲ 완도슈바이처 김성태씨

     "자신만의 행복을 위해서 살아서는 안 된다. 남에게 베푸는 인생을 살자.
일생 동안 아프리카인들을 위해 봉사하여 1952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슈바이처” 정신을 이어받아 자가용차 뒤유리창에 "헌혈, 장기기증, 이웃사랑 당신의 참여가 많은 생명을 살립니다" 라는 문구를 새기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

청해진완도 슈바이처, 김성태(45세, 대주건설 연수원장)씨를 찾아 전남 완도군 완도읍 망남리를 찾아갔다. 건강의 섬 청해진완도에 온지도 8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며 아무 연고도 없는 사람들에게 나눔에 대한 그의 열정이 드러나 있는 참 모습을 인터뷰하며 느꼈다.

김씨는 의도를 가지고 시작한 일은 아니지만 고등학교 3학년인 1983년에 김씨는 요구르트 한 병이 맺어준 인연이 바로 '헌혈'이란다. 헌혈 후 받은 증서는 교회나 단체 등 헌혈증이 필요하다고 연락이 오는 곳에 아낌없이 기증을 하였다는 것.

1983년 이후 26년 동안 헌혈에 320여회 참여하였다. 양으로 따지면 45kg 여성 3.3명의 몸무게에 해당된다는 것.  한달에 2번씩 가능한 성분헌혈을 한다 해도 12년하고도 반년이 걸리는 시간이다.

청해진완도 슈바이처 김성태씨는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에서 나온 홍보물을 보고 주저 없이 신장 기증을 결정 지난 1996년에는 40대 아주머니에게 신장을 기증하고, 2003년에는 대전에 있는 50대 간암환자에게 간의 일부를 기증했다.

2남 1녀 자녀를 두고 한 가정을 이끌어가는 크리스챤 가장으로서 쉽지만은 않은 일들이었겠지만 놀라운 것은 나눔에 대한 그의 태도이다.

김씨는 봉사를 봉사라고 여기지 않고 나와 가족을 위한 저축이며 건강한 사람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하며 누구라도 마음만 결정하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한다.

이 외에도 매달 월급을 쪼개 10여군데 자동이체로 고아원, 양로원, 장애인재활원, 소년소녀 가장 등 이웃을 돕고 있으며, 이른 새벽에 열리는 수협어판장에서 생선 상자를 날라주는 막노동을 한 대가로 돈 대신 생선을 받아 홀로 사는 노인이나 소년소녀 가장, 양로원을 찾아간다.

하지만 오히려 사랑 나눔을 실천할 수 있게 도움을 주신 어선협회 선주, 선장들과 체력관리에 도움준 휴머니즈 헬스크럽 대표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다는 청해진완도 슈바이처 김성태씨의 이야기가 많은 분들에게 알려져 더욱 많은 분들이 장기기증운동과 헌혈운동에 동참하였으면 한다.

또한, 대한적십자사 헌혈홍보대사로 지난 2005년부터는 광주전남 헌혈봉사회 부회장으로,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광주전남 홍보대사 겸 기증인협회 부회장으로 봉사하고 있다.

청해진완도 슈바이처 김성태씨는 소안도에 사는 소아암 학생돕기에 100매의 헌혈증서를 기증하고 백혈병에 고생하는 군외면 황진교회 목사님 아들에게 100매의 헌혈증서를 기증하고 틈나는 대로 장기기증에 대한 대면상담을 통해 자세히 설명해주는 등 운동본부에 가입신청을 안내하고 있다.

김씨는 각종 사회단체 표창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수십회와 전라남도 지사표창 2회, 보건복지부장관 표창(헌혈유공) 등을 수상했다.

한편, 지난 1996년에는 40대 아주머니에게 신장을 기증하고, 2003년에는 대전에 있는 50대 간암환자에게 간의 일부를 기증하고도 항상 밝은 미소를 보이는 “청해진완도 슈바이처 김성태씨”는 전국의 기관에서 최우수상과 대한민국 최고의 목민관상을 수상한 완도군수님이 주는 표창을 한번 받았으면 한다며 웃으며 말했다.

"자신만의 행복을 위해서 살아서는 안 된다. 남에게 베푸는 인생을 살자.
“노벨 평화상을 받은 슈바이처” 정신을 이어 열심히 봉사의 삶을 사는 “청해진완도 슈바이처 김성태씨”가 건강의 섬 “완도군 홍보대사”로 위촉되길 바라며 더욱 많은 완도분들이 장기기증운동과 헌혈운동에
동참하였으면 한다.<石泉>

슈바이처- 일생 동안 아프리카인들을 위해 봉사하여 1952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슈바이처는 30살 이전에 뛰어난 신학자요 철학자, 음악가가 되었다. 29살 때 기숙사의 책상 위에 놓인 잡지에 아프리카인들의 비참한 생활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선교사가 써 넣은 글이 눈에 띄었다는 것."…… 이 곳에는 의사도 없습니다. 약도 없습니다. 의사이신 분은 와 주십시오."

이 글을 본 슈바이처는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아프리카의 흑인들을 위해 일생을 바쳐야겠다고 생각하고 1912년 37살 때 헬레네 브레슬라우라와 결혼하여 함께 아프리카로 떠났다. 온도가 높고 습기가 많은 아프리카에는 많은 환자들 속에 닭장을 개조하여 진료실을 만들어서 거기서 환자들을 치료했다.

의사로서 뿐만 아니라 전도사로도 활동하던 슈바이처는 제 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자 포로가 되기도 하였다. 포로에서 풀려난 그는 또 다시 강연과 오르간 연주로 병원 운영 자금을 모았다.

1924년 다시 랑바레네로 간 슈바이처는 자신의 재산을 모두 털어 제대로 된 병원 건물을 건축하여 일생 동안 아프리카인들을 위해 봉사한 분이다.
<김용환 대표기자>

새감각 바른언론-완도청해진 www.wandonews.kr
입력:20090210-16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